2003년 개봉한 영화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작품으로, 국가폭력과 체제의 논리에 희생된 개인들의 이야기를 충격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실제 존재했던 ‘684부대’는 북한 김일성 암살을 목적으로 창설된 남한의 비밀부대였으나, 정치적 상황이 변하자 이들은 존재 자체가 폐기 대상이 되었고, 끝내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되짚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한국 사회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 우리 시대에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어떤 의미인지 성찰하게 합니다. 2024년 현재, 다시 이 영화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교훈 -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영화 ‘실미도’는 국가의 이름으로 탄생한 비극을 다룹니다. 국가가 어떤 개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고 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영화 속 684부대 요원들은 대부분 전과자 혹은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삶을 보장받는다는 약속 아래 군사 훈련을 시작했지만, 실상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전쟁 병기로서 길러졌습니다. 명분은 '북한 김일성 암살', 즉 국가 안보였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외교 기조가 달라지자 그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고, 결국 제거의 대상이 됩니다.
이 영화가 오늘날에도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런 구조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24년의 한국 사회 역시 국가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도구’로만 취급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 병역제도, 간첩 조작 사건, 공권력 남용 등 다양한 사회 이슈들이 실미도의 서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국가는 언제나 국민을 위한 존재여야 하지만,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국가는 과연 당신을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
684부대원들의 희생은 한순간의 충동이 아닌, 국가 시스템의 오랜 침묵과 외면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과거의 어두운 사건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실미도는 우리 사회에 ‘책임지는 국가’가 왜 필요한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작품입니다.
현재 - 실미도가 던지는 오늘의 메시지
실미도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형태만 바꾼 채 이어지고 있는 사회 구조의 일면입니다. 영화가 개봉되던 당시에는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던 이 비밀 작전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며,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가가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인식은 그동안 가려졌던 역사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오늘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24년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위계 중심, 효율 중심, 조직 보호 중심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군대 내 부조리, 공무원 조직의 폐쇄성, 대형 사건 발생 시 반복되는 ‘꼬리 자르기’와 같은 현실은 실미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여전히 개인은 체제를 위해 희생되며,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애국’이나 ‘의무’로 포장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미도는 이 점에서 경고합니다. 국가가 개인을 소모품처럼 다루는 구조는 반드시 변화해야 하며, 진정한 국가는 구성원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요즘 청년 세대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자신들의 삶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영화는 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시스템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시스템은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가?”
단지 과거의 비밀 부대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미도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그 메시지는 오히려 지금이기에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비극 - 희생과 침묵의 반복
‘실미도’의 가장 참혹한 장면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이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684부대는 국가의 비밀 작전이라는 명목으로 태어났고, 그 존재조차 기록되지 않은 채 역사에서 지워졌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서야 세상에 그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 수십 년 동안 이들의 고통과 희생이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회적 약자, 희생자들이 조용히 사라져갑니다. 산업 재해, 노동 착취, 공공기관의 권력형 비리, 군 내부 사건 등 다양한 형태의 희생이 반복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진상은 은폐되고, 기억은 잊혀집니다. 실미도의 비극은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흐르는 ‘책임 회피’의 문화, ‘불편한 진실은 침묵한다’는 관행을 상징합니다.
684부대원들은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반역을 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명령을 따랐고, 훈련을 견뎠으며,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필요 없게 되자, 그들은 ‘위험 요소’로 간주되어 제거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권력은 언제나 자신에게 불편한 존재를 배척하고,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을 합니다. 문제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실미도’라는 영화 덕분에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게 되었지만, 그와 비슷한 수많은 ‘이름 없는 실미도’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합니다. 이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록과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실미도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슬픈 진실을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결론: 실미도가 남긴 흔적,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할 일
‘실미도’는 단순한 실화 기반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와 권력, 개인과 존엄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2024년에 다시 보는 이유는 단지 과거를 추억하거나 눈물을 흘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지금 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이상 실미도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말해야 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존중이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실미도’는 이제 ‘실화 기반 영화’로만 기억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