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의 진심인 고산자, '아직 못 가본 길이 나의 갈 길이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진 김정호의 '호'입니다. 고산자 김정호는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무모할 정도로 열정을 쏟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임금의 행차시 신하들은 임금이 현재 있는 위치를 크게 외쳐 알리는데 한양을 기준으로 임금이 몇 리나 떨어져있는지를 알리는 것이지요. 지도를 그리는 김정호에게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었으니 그는 행차요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행렬에 숨어듭니다. 결국 발각이 되어 위기에 처하지만 신분이 확인되어 벗어납니다. 이 장면에서 김정호가 지도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김정호는 이렇게 여러 지역을 두루다니며 지도를 그리는 데 자신의 삶을 다 바칩니다. 사계절이 명백한 우리나라 특성 상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지도를 그려갔을 그의 수고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듭니다. 전국 팔도를 누비며 지도에 집착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차별에 참다 못한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던 시기로 국가적으로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김정호의 아버지는 관아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홍경래가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하여 다른 고을로 대비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엄동설한에 먼 길을 지도 한 장만을 의지한 채 떠납니다. 그러나 지도는 오류가 많은 지도였습니다. 지도 상에는 산 하나로 기록되었지만 사실은 거대한 산맥이었습니다. 결국 길을 떠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 채 산 속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도중에 발걸음을 돌릴 수도 있었지만 나라에서 발급한 지도이니 한 번 더 믿어보자고 했던 사람들은 이듬해 봄이 되서야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김정호는 잘못 그려진 지도가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된 지도를 그리는 데 바치게 되지요.
지도는 모든 백성들을 위한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지도에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흥선대원군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지도를 통해 전국의 지리적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권력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함이었겠지요. 흥선대원군은 값을 제대로 쳐 줄테니 목판본을 넘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김정호는 곧 완성이 되면 저잣거리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흥선군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외국인들에게 넘어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그치지만 김정호는 백성을 안 믿으면 누구를 믿을 것이며 백성들이 누구나 지도를 이용하게 해야한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내비칩니다. 그는 지도를 위해서라면 국가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거친 풍파에도 맞섰습니다. 아버지처럼 백성들이 잘 못 그려진 지도 때문에 목숨을 잃게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우산국을 그리러 떠났다가 바다에서 일본 해적들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탄 선원들은 목숨을 잃었고 지도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바다에 버려진 김정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습니다. 왜구들에게 지도를 빼앗기고 혼자 살아 돌아오자 왜구에게 지도를 넘겨준 것이 아니냐며 안동김씨들의 추궁을 받습니다. 흥선대원군에게나 안동김씨에게나 자신들의 세력을 견고히 하기 위해 지도는 꼭 필요했던 것이었지요. 그들의 압박에도 그는 절대 지도를 내어 놓지 않습니다.
지도를 위해 수 년씩 집안을 비우게 되자 홀로 남은 김정호의 딸은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 천주쟁이들은 발각될 수 참수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김정호의 딸 순실은 천주쟁이로 발각이 되고 관아에 잡혀갑니다. 김정호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지도를 내어 놓으려 하지만 이미 딸 순실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고 말았지요.
안동김씨들은 김정호로부터 대동여지도 목판을 빼앗으려 하지만 김정호는 목판이 들어있던 창고에 불을 지르고 떠납니다. 며칠 뒤 저잣거리에 김정호의 동료 황바우를 통해 대동여지도 복사본이 공개됩니다. 무수히 많은 방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대동여지도는 백성들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여담
16년도 9월은 국가적으로도 많은 이슈들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저에게는 이 영화가 큰 울림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차승원 배우의 연기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대사 만이 아닌 그의 헛기침, 실 없는 웃음소리 조차도 연기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흥선 대원군으로 열연했던 유준상 배우 또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황바우 역을 연기한 김인권 배우의 감초같은 연기도 개인적으로 너무 즐거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흥행하지 못해 너무 아쉬운 작품입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니 실제 역사와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딸의 이야기도 허구라고 합니다. 역사를 왜곡하여 진실을 크게 감추고 있다는 생각은 잘 안들었으며 이 영화에서 주는 사람을 위한 마음, 백성을 위한 마음들은 역사적 진실의 여부를 떠나 큰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차승원이 차주부 이미지가 강해 영화 몰입이 어려웠다고 합니다만 오히려 배우 차승원이 더욱 드러난 작품이었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영상미, 감동적인 서사, 사람을 위한 마음
요즘 같이 얼어붙은 시기에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리뷰 였습니다.